이번에 수업을 하나 듣고 왔다.

TECD, 그러니까 Technology-Enabled Care Delivery: From Digital Medicine to AI라는 코스다.

AI를 위시한 디지털 기술을 실제 진료에 어떻게 도입하고 평가할지 등을 다루는 강의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수업 자체는 9월부터 11월까지, 한 주에 한 번씩 시행하는 온라인 웨비나를 통해 진행된다.

두 달간의 과정 중에 캡스톤 프로젝트라 하여 본인이 속한 기관과 연관된 프로젝트 하나를 정해 진행하고, 그중 10/24~26에는 하버드 의대 캠퍼스에서 사흘간의 대면수업 (Immersion이라 부른다)을 진행하는 식이다.

마침 얼마 전 대면수업을 다녀왔는데, 수업 내용도 재밌었고 참가하신 분들의 면면도 매우 흥미로웠다. 의료진을 포함해 병원 경영진, 산업계, 공학자, 연구자, 보건경제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이 많았고 심지어 국적도 다양했다.

아무튼, 이 과정을 들으며 느꼈던 점들을 간결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날

첫째 날은 8시 반부터 5시까지 총 4개 수업을 들었다.

첫 번째 강의: 병원은 기술을 어떻게 고르는가?

첫째 강의는 브라운 대학교 계열 병원 그룹의 최고디지털정보책임자(CDIO) 분께서 맡았는데, 병원이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 기술적 해법을 찾을 때, 이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연하게도, 우선 현재 병원에서 쓰는 전자의무기록 시스템 (이하 EHR)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본다. 이 단계에서 해결되면 추가적인 해법이 필요 없으니까.

안 된다면?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화된 전문 제품을 찾는다. 만일 제품이 없다면? 직접 만들기를 검토한다.

이미 외부에 사용 가능한 제품이 있다면 이를 이용하기가 새 제품을 만들기보다 훨씬 빠르고 편하니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한 가지 재미난 생각거리는 LLM의 발전으로 이 순서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 요즘 워낙 AI 성능이 올라왔으니까 말이다.

물론, 제품을 만들고 유지보수한다는 게 말로 하면 쉽지 실제론 손이 엄청 많이 가고, 이걸 적용하는 병원/기관의 규모에 따라 난이도가 많이 달라질 테니 외부 제품이 있다면 이를 이용하는 편이 여전히 제일 효율적이긴 하겠다.

다만, LLM이 계속 발전한다면 병원 내부에서 팀을 꾸려 자기네 워크플로우에 맞춘 제품을 만드는 편이 외부 제품을 이용하기보다 더 효율적인 시점이 올 수도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볼 만한 거리다.

만일 이런 상황이 보편화된다면 스팀 창작마당처럼 EHR에 기반을 만들어놓고, 병원이나 개별 사용자가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을 만들어 올리고, 인기가 많아지면 정식 기능으로 편입되고, 뭐 이런 방향도 혹시 가능할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도 해 본다. (게임 모드 까는 것과 환자 진료에 쓰는 기능을 추가하는 건 책임의 범위가 훨씬 다르기는 하다만서도.)

Ambient Documentation

Ambient Scribe는 한 마디로 AI가 해주는 환자 차팅이다. 미국에서 점점 많이 쓰는데, 환자 진료를 보는 동안 앱을 켜두면 진료가 녹음되고, 음성이 텍스트로 변환, 텍스트가 환자 차트의 형태로 자동으로 쓰여지는 식이다.

미국은 환자 차트를 워낙 세세하게 작성하길 권하니, Ambient Scribe 기능을 제공하는 앱들이 얼마나 인기를 끌고 있는진 더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다.

다만 1) 의료진이 Ambient를 정말로 좋아하는지, 2) 의료진 번아웃을 줄여주는지, 3) 문서 작성 시간을 정말로 줄이는지, 4) 노트가 얼마나 정확한지… 등등 확인해야 할 부분들이 여럿 남아 있다.

이는 의료진이 편하게 느껴도 실제 노트 작성 시간엔 영향이 없을 수도 있고 (AI가 쓴 노트를 검수하고 수정해야 하니까), 차트의 질이 꼭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

이런 부분들을 조사한 논문도 꽤 많던데, 최근 읽은 논문에선 재밌게도 차팅하는 시간 자체는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진료 중 차팅하는 시간은 줄었는데 나중에 수정하는 시간이 길어서 또이또이였다) 의료진 만족도는 올라갔다는 결과가 있었다. 뭐, 맨땅에서 노트를 적어나가기보단 초안을 수정하는 편이 아무래도 편하니 당연한 결과일까?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은, 만일 EHR 회사가 이 기능을 자사 제품에 장착하고 출시했을 때, 서드파티 전문 업체의 경쟁력은 과연 어디에서 오냐는 부분이다.

미국 최대 EHR 회사인 Epic의 경우 Chart with Art라 해서 자사 제품에 Ambient Scribe를 올해 장착했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Epic과 연동해 Ambient Scribe 기능을 제공하던 제품들에겐 큰 경쟁자가 생긴 셈이다. 과연 승산이 있는 걸까?

두 번째 강의: Last Mile Problem

개인적으론 되게 재밌게 들었던 세션이다. 비대면진료, 원격 환자 모니터링, 그리고 Hospital at home (재택병원? 재택입원치료?) 개념에 관심이 많으니까.

우리의 의학 지식은 발전했지만, 실제 치료를 환자의 일상과 연결하고 전달하는 과정은 마냥 쉽지 않다.

만성질환은 환자의 삶에 녹아 있어 늘 변화한다. 환자의 삶이 하나의 면이라면, 건강은 면 위를 지나는 하나의 선이며, 진료는 이 선을 어림하기 위해 이따금 찍히는 여러 개의 점이다.

점과 점 사이, 진료와 진료 사이 기간은 긴 경우가 흔하고, 이렇게 드물고 짧은 만남에 기반해 의료진은 환자의 건강 상태를 유추하고 치료해야 한다.

이를 어쩌면 보완해줄 수 있는 요소들이 원격환자 모니터링 (RPM) 혹은 재택입원치료 (hospital-at-home)인데, 재택입원치료란 곧 입원환자 수준의 의료를 가정 환경에서 제공하려는 시도다.

쉽지 않아 보인다고? 바로 그렇다. 가정 방문 인력을 어떻게 구성할지, 필요한 약이나 장비는 어떻게 조달할지, 악화 시 병원으로 옮기는 과정은 어떻게 할지 등…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실제로 비대면이 피크를 치던 코로나 시절에 제일 흥행했던 개념이다. 그 후로는 Medicare 특례가 중간에 끊기기도 하며 불안정해졌다 (올해 초 2030년까지 5년 연장되긴 했다). 환자의 건강 상태가 입원과 외래 관찰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경우가 분명 있으니, 여전히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개념이다.

수업에선 고혈압 관련 RPM 관찰연구 역시 다뤘는데, RPM을 많이 쓴 진료소는 적게 쓴 곳보다 약 처방과 일차의료 방문은 늘고, 응급실·입원 같은 급성기 이용은 줄었지만, 고혈압 관리와 관련된 지출은 늘었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지도?)

아무튼 질병 예방, 관리 등에 관심이 많은지라 꽤 흥미롭게 들은 세션이었다.

세 번째 강의: 그래서 돈은 누가 냄?

Reimbursement. 그러니까 진료행위에 대한 보상을 어떻게 받는지에 대한 부분은 항상 흥미로우면서도 어려운 주제다. 그야 의대에선 깊이 안 가르치는 부분이잖아?

문제는 실무를 할 때에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부분이란 점.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이나 레지던트 시절에 이 부분을 더 체계적으로 알려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강의에선 의료기술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경로들을 설명했다. 크게 네 가지였다.

  1. Fee-for-service: 서비스를 제공할 때마다 CPT 코드로 청구하는 방식이고.
  2. Absorbed into existing reimbursement: 로봇 수술처럼 기존 진료비 내에서 기술 비용을 감당하는 방식도 있고.
  3. Capitation/value-based care: 일종의 인두제나 가치 기반 계약이다. 일정 환자군의 관리와 비용에 대한 책임을 지는 방식?
  4. Outcome-based payment: 결과에 따라 지불하는 방식. 그런데 이를 위해선 결과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겠지?

AI 등을 의료에 적용하더라도, 그 방식이 어떤 보상체계에 적합한지는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라 하겠다. 아마 제품의 성격이나 적용 방식, 워크플로에 따라 어떤 보상이 적절한지가 달라지겠지.

수업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부분은 CMS의 ACCESS와 FDA의 TEMPO 파일럿이다.

CMS의 ACCESS는 2026년 7월 도입된 지불 모델이다.

고혈압, 당뇨, 만성신질환, 만성통증, 우울, 불안… 딱 들어도 마땅히 완치가 없고 오랜 기간 들고 가는 질환들 아닌가? 이런 질환들을 기술로 관리하는 기관에 환자당 정기적으로 보상을 지급하는 체계가 ACCESS다. 다만 전액 지불을 받기 위해선 관리하는 환자 중 일정 비율이 목표 결과에 도달해야 하는 제약이 있다. (해마다 기준도 올라감)

기존 RPM이나 기기 관련 수가가 며칠 동안 기기를 썼는지, 몇 분 동안 관리했는지 등에 대해 지불을 했다면 ACCESS는 실제로 환자가 좋아졌는지에 대해 주안점을 두는 느낌이다. (환자를 의뢰한 주치의도 경과 보고에 따라 약을 조절하면 공동관리 수가를 받을 수 있다나.)

FDA의 TEMPO는 ACCESS와 짝지어 생각하면 되는데, ACCESS가 적용 가능한 저위험 디지털 헬스 기기라면, 정식 FDA 허가 전이라도 일부 규제를 유예해 주고, 실제 사용을 허용하며,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식 허가를 받게 하는 제도다. 아직 파일럿이라 얼마나 지속될진 모르겠다만, 수가는 CMS가 환자 결과에 따라 지급하고, 이를 기반으로 FDA는 디지털 헬스 기기가 근거를 쌓게 해 주는 구조다.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를 두고 했던 Pre-Cert 파일럿 때도 그렇고, FDA는 재밌으면서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혁신 규제 실험을 꽤 자주 내놓는 것 같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고, 각자의 캡스톤 프로젝트도 서로 검토하고 하며 첫날은 지나갔다.

적다 보니 생각보다 길어지네.